화장실 독립수행이 불가하다는 특성과 아이의 수준을 고려하여 새로운 IEP계획을 모두 짜고, 화장실 훈련부터 시작해서, 아이의 수준에서 충분히 수행가능한 낮은 수준의 기능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평소 악세사리처럼 걸고만 다니던 AAC의 사용범위를 조금씩 늘여갔습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AAC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별적으로 촉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아이와 접촉하는 모든 스탭들도 동일하게 중재할 수 있게 소통방법에 대한 단체 스탭 트레이닝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당장은 그렇게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유심히 아이를 관찰하던 어느 날 아이가 한 걸음 성장했다는 중요한 단서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이 아이가 AAC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기기에는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손가락으로 대충 스크린을 쓱쓱 문지르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기기에 시선도 마주치지 않았기에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충 문지른다고 생각한 그 과정이 알고보니 아이가 상황과 의도에 맞는 정확한 아이콘과 버튼을 찾아 대답하고 있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에 함께 근무중인 언어치료사와 함께 아이의 언어수준을 평가해 보기로 했습니다. 아이의 집중력이 짧아서 약 1개월에 걸쳐서 테스트를 진행해 보았지요. 그리고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테스트 당시 아동의 나이는 9세였는데, 표현언어수준 9세, 수용언어수준 10세로 그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래의 평균을 상회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지요. 아이가 AAC기기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충 문지르는줄 알았던 그 과정들에서, 가장 처음에 손가락을 갖다대고 선택했던 답이 대부분 정확한 정답인 것이었지요.
힘이 없어 흐느적 거리며 돌아다니는 아이, 무발화에 누가 보아도 심각한 수준의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 눈에 보이는 것은 무조건 입에 집어 넣는 아이, 심지어 자신의 대소변까지 입에 넣는 아이가 언어와 인지능력이 자신의 나이보다 높게 나왔다는 사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로는 충격이었습니다. 특수교육 현장에서 근무하며, 아이를 관찰하고 아이의 수준과 도움이 필요한 정도를 어느정도 가늠할 줄 안다고 느꼈던 저의 기준이 와르르 무너져내렸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아이의 수준을 파악하는 이 방법이 정말 무의미 할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칼럼에서 썼던 자폐아동의 상당수가 지능에 문제가 없다고 확신하는 기준 역시도 이 사례가 정말 많은 영향을 미쳤었지요.
오늘은 윤소장이 미국 특수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을 때 겪었던 사례 한 가지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전 포스팅에서는 문제행동의 기능에 대해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번에 말씀드릴 사례에서는 문제행동 기능과 관련한 부분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지만 해당 내용에 대해서 모르고 계시다면 미리 이 포스팅을 보고 오시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https://blog.naver.com/themoon_aba/222948786823
아이와의 첫 만남
샌프란시스코 특수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할 때, 하루는 학생 한명을 봐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미국의 사립특수학교 시스템은 공립특수학교에서 받아달라는 요청(Referral)이 이루어지면 IEP 검토 후에 해당 절차가 이루어지게 되는데요. 이 아이의 IEP요약본을 살펴보니 꽤 심각하고 다양한 문제행동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아이를 실제로 대면했을 때 아이는 AAC(의사소통대체 기기)를 목에 메고 있긴 했으나 사용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고 관심도 없어보였습니다. 개인 스탭이 함께 붙어있긴 했지만 아이를 쫓아다니기 바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틈만나면 바닥에 떨어져있는 물건들을 입에 넣고 삼키는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대변을 본 후에도 손으로 만지고 입에 넣으려고 하는 등 흔히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수준의 문제행동을 계속 보이고 있었으며,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거든요. 분명히 쉽지 않은 아이였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아무리 특수학교라 하더라도 문제행동이 너무 심한 경우에는 아이를 거부하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하지만 '어떤 장애가 있던 나에게 오는 아이에게 NO는 없다'가 제 신조였기에 해당 학교의 요청(referral)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와의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여정. 그리고 아이의 점진적인 성장
화장실 독립수행이 불가하다는 특성과 아이의 수준을 고려하여 새로운 IEP계획을 모두 짜고, 화장실 훈련부터 시작해서, 아이의 수준에서 충분히 수행가능한 낮은 수준의 기능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평소 악세사리처럼 걸고만 다니던 AAC의 사용범위를 조금씩 늘여갔습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AAC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별적으로 촉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아이와 접촉하는 모든 스탭들도 동일하게 중재할 수 있게 소통방법에 대한 단체 스탭 트레이닝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당장은 그렇게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유심히 아이를 관찰하던 어느 날 아이가 한 걸음 성장했다는 중요한 단서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이 아이가 AAC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기기에는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손가락으로 대충 스크린을 쓱쓱 문지르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기기에 시선도 마주치지 않았기에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충 문지른다고 생각한 그 과정이 알고보니 아이가 상황과 의도에 맞는 정확한 아이콘과 버튼을 찾아 대답하고 있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에 함께 근무중인 언어치료사와 함께 아이의 언어수준을 평가해 보기로 했습니다. 아이의 집중력이 짧아서 약 1개월에 걸쳐서 테스트를 진행해 보았지요. 그리고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테스트 당시 아동의 나이는 9세였는데, 표현언어수준 9세, 수용언어수준 10세로 그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래의 평균을 상회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지요. 아이가 AAC기기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충 문지르는줄 알았던 그 과정들에서, 가장 처음에 손가락을 갖다대고 선택했던 답이 대부분 정확한 정답인 것이었지요.
힘이 없어 흐느적 거리며 돌아다니는 아이, 무발화에 누가 보아도 심각한 수준의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 눈에 보이는 것은 무조건 입에 집어 넣는 아이, 심지어 자신의 대소변까지 입에 넣는 아이가 언어와 인지능력이 자신의 나이보다 높게 나왔다는 사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로는 충격이었습니다. 특수교육 현장에서 근무하며, 아이를 관찰하고 아이의 수준과 도움이 필요한 정도를 어느정도 가늠할 줄 안다고 느꼈던 저의 기준이 와르르 무너져내렸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아이의 수준을 파악하는 이 방법이 정말 무의미 할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칼럼에서 썼던 자폐아동의 상당수가 지능에 문제가 없다고 확신하는 기준 역시도 이 사례가 정말 많은 영향을 미쳤었지요.
https://blog.naver.com/themoon_aba/222924034385
장애에 대한 선입견. 지능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으세요.
지금도 이 아이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굉장히 장애가 심한 아이라는 선입견이 들 것 입니다. 특히 흐느적거리면서 걷는 모습, 그렇게 걷다가 아무 곳에서나 털썩 주저앉는 그 모습은 일반적인 또래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겉으로 보는 모습과는 다르게 이 아이는 누구보다 빠른 사고가 가능하고 심지어 일반 아이들보다 빠른 학습 속도와 인지기능을 갖고 있는 아이입니다.
작년에 학교에서 퇴사하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이의 모습을 보면 예전 모습이 정말 그랬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 걱정했던 화장실 문제, 그리고 입에 모든 것을 집어넣는 행동(PICA)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기능 향상에 따라 새로운 교육목표를 수립하고 교과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전환된 후에는, 동일 연령의 일반교육과정에 있는 아이들의 평균보다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이기도 했으니까요.
이 사례를 보시는 분 모두가 나름대로 여러 가지를 느끼셨을겁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 치료사는 치료사로서 말입니다. 저는 이 사례를 직접 겪으면서 아이에게 적합한 교육방식을 찾는다면 아이는 반드시 성장할 수 있다. 아이에게 맞는 진정한 개별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자 등 제 교육철학에 굉장히 주요한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진정한 개별화 교육, 그 개별화 교육의 의미. 제 개인적인 교육철학으로 끝나지 않고 모든 선생님들 교육자들도 함께 고민하고 공유할 수 있길 바라며 이번 포스팅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본 포스팅이 도움이 되셨다면 공감을, 궁금한점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달아주세요.
원문: https://blog.naver.com/themoon_aba/222955584338